독서에 대한 잡담 | Posted by Jisik Library bookseminar 2009/10/14 12:04

당신의 독서는 괜찮습니까?

오늘은 제가 쓴 글을 올립니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독서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보고 있는데요..

그 내용 중 일부 내용입니다. ^^


서점에는 수 없이 많은 책들이 있다. 경제경영서의 경우 하루에 10권 이상 출간된다고 하니 1년 동안 출간되는 경제경영서는 3600권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재테크 분야는 연간 1만권 이상이 출간되기도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판매가 가능한 도서는 350만 권에 이른다고 한다. 이 정도의 숫자라면 서점에 가서 무슨 책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는 큰 고민거리에 해당된다. 책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책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 내가 무슨 책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책을 봐야 지금 내가 고민하는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디선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미디어에서는 매주 좋은 책이 나왔다라며 신문과 방송을 통해 설명을 하곤 하지만, 그 책이 내게 맞는 책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책을 선택해 보아도 내 상황에 맞는 책인지, 혹은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분야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지만 우리들의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게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며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CEO들은 리더십과 관련해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기업 임원들은 지금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위해서 또, 회사의 미래 전략을 위해서, 그리고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은 취업 준비생은 입사를 하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묻곤 한다. 내가 책과 관련한 일들을 하고 있고 책 관련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하고 있으니 어떤 책을 읽는 것이 좋은 것인지 의견을 듣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질문을 해 오게 되면 늘 무슨 답을 해주어야 하나 난감하다.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해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쉬운 책을 추천해주면 상대방은 자기 수준이 그것 밖에 안 되는 것 같으냐며 반문하기도 하고, 반대로 어려운 책을 추천해 주면 읽기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기분 상하거나 부담되는 책은 좋던 인간관계도 서먹해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책 고르는 몇 가지 기준만을 알려주는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쉬운 책을 보라고 권한다. 쉬운 책이란, 충분히 흥미를 가질 수 있고 재미를 가지고 끝까지 읽어낼 수 있는 책을 말한다. 책이 어려우면 더 읽기 싫은 법이다. 배움처럼 느끼지 않고 쉽게 읽히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좋다는 말이다. 대신 절대 시중 서점에서 말하는 베스트셀러에서 고르지 말라고 덧붙인다. 물론 베스트셀러를 읽어서 특별히 해가 될 염려는 없다. 하지만 베스트셀러에만 탐독하다 보면 자칫 책을 보는 기준이 파퓰리즘에 빠지게 될 수 있고, 세상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좋아하는 트렌드만을 읽게 되기 때문이다.


나도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를 살펴보기는 하지만, 직접 책을 사서 읽어보지는 않는다. 대충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구나.” 라고 하는 것으로도 간혹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세상의 트렌드를 읽어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구매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구간에서 주로 책을 찾는 편이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지만 오래된 책들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 이상하게도 새로 나오는 책들은 너무 얄팍하고 상술에 뒤덮여서 오히려 애독자들의 반감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는 약 6천 권 정도의 책을 읽은 것 같다. 회사 책장에 있는 책이 2만 권 정도가 되니까 그 중 3분의 1은 읽은 셈이다. 6천 권 읽었다고 해서 많이 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책을 생각하면 아주 적은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책을 읽는 숫자에 비례해서 더 지혜로워 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실제 책을 쓰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책은 한 사람의 삶의 철학이면서 자기 자신과도 같은 분신이다. 책을 쓰면서 대충 쓰는 사람도 없다. 자기 혼신의 힘을 다해서 책을 쓰는 것인데, 우리는 정말 값싸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되는 것이 바로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진정한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작업인 셈이다.


그러나, 독서와 관련해서 무작정 쉬운 책부터 읽어라.”라는 이야기로 독서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남는다.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책들이 존재하고 앞으로도 수 없이 많은 책들은 출간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나름대로의 명확한 기준을 갖지 않고서는 밀려드는 홍수 속에서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수 많은 책 속에서 그 어떤 책도 고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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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대한 잡담 | Posted by Jisik Library bookseminar 2009/10/13 14:54

북세미나닷컴의 독서클럽

참, 블로깅이란 어려운 일 같습니다. 

예전엔 처음 블로그를 접하게 되고 블로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되는 말, 안되는 말을 마구 쏟아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저것 알고 배우고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 같습니다. 

때로 그 위력에 놀라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무서운 것 같기도 합니다. 


용기를 내서 블로그를 다시 운영합니다. 

원칙을 정해봤습니다. 

적어도 매일 하나씩의 글을 포스팅하자는 겁니다. 


요즘엔 북세미나닷컴에서 작은 독서클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6명 정도가 참여하는 독서클럽인데요.

5개월 동안 운영하기로 결정을 하고서는 벌써 2번의 모임을 마쳤습니다. 

독서클럽은 아래의 카테고리를 거치게 됩니다. 

 국제정치경제&금융

 심리학

 리더십

 마케팅

 미래학

 자기계발

 트렌드

 인문&문명비교

 지식융합

너무 많나요?

뭐, 하여간 그래서 5개월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이것을 하면서는 저도 배우는게 있습니다. 

예를들면, 실제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속마음 말입니다. 

또 책을 읽으면서 저 혼자 생각해 왔던 책 읽는 순서에 대한 확신도 가지게 되었구요. 

가령, 국제정치경제와 금융에 대한 책은 20대에게는 맞지 않는 책이라는 것 등등..


그래서 북세미나닷컴에서 운영하는 지식라이브러리(www.jisiklibrary.com)에서는 

"밸런스 리딩"이라는 제목으로 코너를 운영해보려고 합니다. 

책을 읽는 방법과 순서,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에 대한 내용을 담는 것인데요. 

당장 시작하려고 합니다. 


벌써, 찬바람이 매섭게 느껴지네요.

건강 유의하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광화문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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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펼쳐보자 | Posted by Jisik Library bookseminar 2009/08/21 14:53

세계는 울퉁불퉁하다





지금 왜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십여 년 전 저자 김성해 교수는 환란으로 어수선한 나라를 뒤로하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정리해고, 기업의 해외 매각, 그로 인한 실업, 명예퇴직과 IMF형 고아까지. 저자는 박사학위 논문에 우리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에 대한 고민을 담으려 했다. 중국과 인도처럼 자본 통제를 한 나라에는 외환위기가 없었다. IMF를 걷어차고 자본 통제를 단행한 말레이시아는 성공적으로 경제 회복을 이루었지만 IMF를 따른 인도네시아는 국가 파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IMF는 왜 금융 시장 개방을 강요했을까?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 저자의 연구는 자본 시장 개방의 가장 큰 수혜자가 씨티그룹과 모건스탠리 등 월 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자그디시 바그와티는 미국 재무부가 월 스트리트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고, 그 결과 IMF의 왜곡된 정책이 아시아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IMF 모범생이었던 한국이 지금 세계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가 IMF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을까? 김성해, 이동우 저자는 영어 광풍, 계약직과 정규직의 갈등, 투기 자본의 횡포, 기러기 아빠, 높은 실업률 등 지금의 이 모든 문제가 과거 IMF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국제사회와 우리 사회가 모두 IMF의 주장을 받아들이기까지 담론들의 경쟁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왜 강대국 미국과 국제기구 IMF에 설득 당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1998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외환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정경유착(39.6퍼센트)을 뽑고 있으며, 정부 정책 실패(26.0퍼센트), 재벌의 중복 투자(20.3퍼센트)가 뒤를 잇고 있는데, 이러한 시각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아시아의 기적을 이뤄낸 공신으로 칭송받던 아시아 경제 모델은 정부 주도의 개발과 은행-정부 공조를 특징으로 하는데, IMF의 구조조정 요구는 특히 정부의 기업 특혜 폐지와 금융 시장 추가 개방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저자들은 IMF의 의도를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미국 정부와 IMF가 한목소리로 한국 경제 구조를 비난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 금융 시장 개방을 노리는 월 스트리트와 한국 재벌기업들을 경계하는 다국적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있었고, 또 이렇게 ‘내 탓이오’ 논리가 국내에서도 통하게 된 것은 미국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했던 한국의 엘리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데 있지 않다. 저자들이 말하는 글로벌 게임의 규칙에 따르면, 지식에도 일종의 노동 분업이 있으며 그에 따른 권력 분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즉 미국과 같은 강대국은 자기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고, 한국과 같은 주변국들로 하여금 게임에 참가하는 것이 빠지는 것보다는 이롭다는 점을 설득, 규칙의 불공정함에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오로지 그 규칙 안에서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만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십여 년 전 상황이 반복 재현되고 있는 지금, 더 이상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정의로 통하는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길은 먼저 한국의 국익을 지킬 수 있도록 지식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왜 미국이 말하는 세계화에서 벗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왜 우리 스스로 세계화의 미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 프리드먼에게만 ‘평평한’ 세계


김성해 교수는 10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외환위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 부족한 영어로 시작한 저자의 첫 질문은 미국 사람은 왜 아시아 위기에 관심이 없느냐는 것이었고, 미국 교수의 대답은 아시아 문제는 자네가 풀어야 할 문제지 미국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국 독자들이 열심히 읽고 있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어떤 독자를 겨냥하고 책을 쓸까? 이동우 대표는 방한한 석학과 인터뷰를 했지만, 그의 책 원서에는 원래 한국에 관한 내용이 없다는 걸 발견하고는 아무리 석학이고 글로벌 세상이라지만 지식에는 여전히 국경이 있다는 걸 통감했다. 저자들은 이처럼 ‘지식’이라는 것은 현실적인 이해관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의 문제는 남이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김성해 교수는 처음에는 외신이 한국 책임론으로 몰고 간 이유가 한국 정부의 ‘소통’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지 언론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달러 헤게모니라는 핵심적인 사안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지금의 세계화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달러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마련한 규칙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두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지금의 문제들이 달러 헤게모니라는 강대국이 정한 구조적인 틀 안에 우리가 휩쓸렸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이며,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 더 나은 한국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한국 독자에게 정확히 알리고 조금이나마 지적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우리나라에서 세계화에 대한 필독서처럼 알려진 『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제는 경쟁 조건이 평등하니 어디서 태어나든 무엇을 하든 간에 능력과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매력적인 주장은 이상일 뿐 현실은 아니다. 세계가 평평하다는 프리드먼의 주장은 세계화의 현상적인 일부 단면일 뿐 냉혹한 지구 환경의 현실은 여전히 울퉁불퉁하다. 왜 그럴까? 구조적 권력인 미국이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그 안에서 유럽, 일본, 국제기구 등이 상대적 권력을 행사하며, 주변국인 우리는 불공평한 규칙을 고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강자를 따라가기 위해 규칙을 잘 익힐까만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울퉁불퉁하다』는 과거 외환위기를 통해 지금의 위기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와 한국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이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한국 엘리트들이 미국의 앵무새로 전락한 이유는?


아시아 경제 모델이 잘못되었다면 그동안 아시아의 경제 기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거 IMF 위기가 한국뿐 아니라 브라질, 러시아 등 전 세계로 퍼졌다면, 아시아 경제 모델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국제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었을까? 또 미국식 경제 모델이 옳다면 왜 지금의 미국이 이런 공황을 겪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1997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정규직, 족벌 경영, 재벌 해체라는 말은 모르고 살았다. 그리고 1998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금융 위기의 원인이 한국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나쁜 정책론’은 세계 경제 구조의 모순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금융공황론’과 경쟁하는 하나의 담론에 불과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시아 모델은 악으로 둔갑해 있었고, 우리는 그걸 뜯어고쳐야 한다는 ‘내 탓이오’ 논리를 받아들였다. 왜 그랬을까? 야당으로서 최초 민주적인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는 새로운 정통성 수립을 위해 과거를 부정해야 했다. 그래서 미국이 주장하는 나쁜 정책론을 적극 수용,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언론까지 컨트롤하면서 전 방위로 국민을 설득했다.


1998년 이후 약 10년간 한국의 신흥 파워엘리트로 등장한 그룹의 핵심에는 미국 유학파 출신의 전문가 집단, 민주화의 주역으로 알려진 386 세대, 비주류의 설움을 받았던 충청과 호남인들이 있었다. IMF 위기는 이들에게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었으며, 그 출발점이 한국 판 일본식 경제 모델인 박정희 모델(압축 성장 모델)에 대한 부정이었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웠다. 그 예로, 2006년 청와대는 “외환 위기로 압축 성장은 지속 불가능한 성장 모델이었음이 입증됐다.”면서 “그것은 서강학파의 종언을 의미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남덕우, 김만제, 이승윤, 김용환 등 서강학파는 대부분 TK대구, 경북 출신이면서 DJ 정부 이전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반면 신흥 권력으로 등장한 중경회 소속의 김태동, 전철환, 이진순 등은 TK 출신이 아니면서 1998년 이후 정부에서 비로소 활약을 시작했다. 과거 서강학파에 속했던 분들이 현재 이명박 정부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등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중경회 출신들이 MB 정부에 가장 비판적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4부 「신흥 파워엘리트의 선택」 중에서)


‘내 탓이오’ 논리를 받아들인 한국 지식인들의 배경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 미국 유학파 출신이며, 또 게임의 규칙을 논하는 정치학보다는 규칙을 어떻게 하면 잘 따라갈까를 연구하는 경제학을 공부했다.


1997년부터 2005년 사이에 국내 언론에서 2회 이상 인용된 국내 출신 외환위기 전문가는 약 쉰여섯 명에 이른다. 이들 중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의 비중은 약 80퍼센트이며, 나머지는 유럽, 일본 및 국내에서 공부를 했다. 전공별로 구분해 보면 이들의 89퍼센트가 경제와 금융을 전공한 사람들이며, 정치학과 사회학 전공자는 11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 중 압도적인 75퍼센트가 ‘나쁜 정책’ 프레임을 채택했으며, ‘금융공황’ 프레임을 택한 비중은 불과 25퍼센트에 불과하다. (4부 「미국의 앵무새들」 중에서)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지식인들 중에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경제학 박사인 박대권과 이창녕,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인 정운찬 교수가 있고, 미국 정부 및 미국 지식인과 교류가 많은 정부 관료들 중에서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 당시 경제수석이었던 김인호, 강경식 전 부총리, 전직 경제수석이었던 김태동 교수 등이 있다.


물론 국내 지식인들 중에서도 일부는 ‘금융공황’ 시각을 택하고 있다. 예컨대 외환위기 당시 대우경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외환 위기의 발발 시점부터 이 프레임을 채택했다. 그는 먼저 당시 위기를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진단했으며, IMF식 구조조정이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환 위기의 주범으로 알려진 재벌 그룹의 경제연구소 소장이라는 지위로 인해 그의 주장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또 ‘금융공황’ 프레임을 선택한 사람들 대부분이 미국이 아닌 벨기에, 스페인, 영국 및 일본 등에서 학위 과정을 마쳤고, 그들의 전공이 정치학, 사회학 또는 마르크스 경제학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4부 「미국의 앵무새들」 중에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또 경제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이 프레임을 채택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외환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알려진 정부, 재벌 등 한국 내 파워엘리트에 속했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먹히질 않았다. 

예를 들어 박세일, 윤영관, 최병일 모두 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이한구와 박영철도 각각 대우경제연구소와 KDI 근무 경력이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국내 언론들은 미국 출신 경제학자, IMF 관료 및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해 온 학자들을 권위자로 내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나쁜 정책’ 프레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1998년 브라질로 위기가 확대되고 국내 상황이 급속히 개선되면서 ‘금융공황’ 측면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관료들과 경제학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 그렇지만 ‘나쁜 정책’ 프레임에 기반을 둔 외환위기 담론은 이 시기 이미 지배적인 담론의 지위를 거쳐 우리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4부 「미국의 앵무새들」 중에서)


★ 지식도 ‘국적’이 필요하다


지식이 담론의 일부로 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정치, 경제, 사회, 인문학에서 국경은 매우 중요하다. 더 이상 남의 말, 강대국의 논리, 미국의 주장을 따라갈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지식의 편식이 너무도 심했다. 이웃 선진국 일본을 예로 들어 보자. 노벨상 수상자들 가운데 유학파가 많지도 않고, 미국에 비자가 면제된 나라인데도 미국 유학생은 우리보다 더 적으며, 국내 외국인들에게 영어 논문을 받고 있는 우리와 달리 자국의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일본어로 논문을 받고 있으며, 일본식 경제 모델을 고수하고 있지만, 일본은 여전히 경제 강국이다. 반면 우리는 EU와의 교역량이 미국보다 더 큰 상황인데도 아직도 브뤼셀에 특파원 한 명 제대로 파견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우리 자신이 주인이 되어 문제의 연결고리를 찾고 이들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게임의 규칙을 파악하여 우리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 우리가 꿈꾸는 세계화는?


그렇다면 글로벌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있는 미국이 겨냥하고 있는 건 정확히 무엇일까? 바로 달러 헤게모니다. 즉, 세뇨리지 효과를 누리면서 외환보유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달러 기축통화 정책을 말한다. 유로 통화를 출범시킨 직후,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총리는 유로의 진정한 목적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유럽이 미국과 동등한 발언권을 갖게 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또 로버트 먼델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도 미국이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있어 달러 헤게모니의 유지는 군사적 절대 우위만큼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국제 금융 질서에서 1999년 출범한 유로의 의미는 각별하다. 이처럼 유로의 도전에 직면한 미국은 더 이상 달러 헤게모니의 침해를 두고 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아시아통화기금 설립을 반대하는 데 대외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는 이유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을 때 가장 먼저 차관을 제공한 나라는 일본이다. 미국은 우리가 IMF의 조건을 무조건 수락하기 전까지 일본의 차관 제공을 막기까지 했다. 하지만 멕시코 위기 때 미국은 재빨리 움직였다. 왜 그럴까?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와 달리 한국 위기는 미국에게 상대적으로 먼 나라 일이었고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다급한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아시아가 공조해야 할 첫째 이유다. 역사적으로도 권력은 3극 체제가 가장 안정된 체제다. 따라서 달러만 들어오면 금융 위기가 난다는 세계 금융 시스템을 바로잡고 보다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한중일 아시아가 뭉쳐 세계를 미국, 유럽, 아시아 3극 체제로 재편해야만 한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도 세계 경제 대국인 이유, 미국이 ‘일본 때리기’에 열중했던 이유, 일본이 아시아 모델을 고수하면서 SONY와 같은 세계적 기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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